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파리 외방전교회 전경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  Paris France)

선교사들의 편지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고문서고, 파리 외방전교회 고문서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선교사의 편지와 한국교회사연구소, 절두산 순교성지에 보관된 조선시대 신자들의 편지와 기록입니다. 불어, 한문, 라틴어, 또는 한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샤스탕 신부가 순교 직전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만 24세에 신부가 된 샤스탕은 조선 선교사가 되기를 자청하고 1833년 조선으로 길을 떠나 1837년 김대건 신부와 조선에 입국하였다.  1839년 박해가 일어나자 앵베르 주교는 샤스탕 신부에게 중국으로 피신할 것을 권했으나 샤스탕 신부는 남아 사역을 계속하였다. 박해가 심해지자 신부는 자수하여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839, 파리 외방전교회 고문서고)

샤스탕 신부가 순교 직전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만 24세에 신부가 된 샤스탕은 조선 선교사가 되기를 자청하고 1833년 조선으로 길을 떠나 1837년 김대건 신부와 조선에 입국하였다.

1839년 박해가 일어나자 앵베르 주교는 샤스탕 신부에게 중국으로 피신할 것을 권했으나 샤스탕 신부는 남아 사역을 계속하였다. 박해가 심해지자 신부는 자수하여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839, 파리 외방전교회 고문서고)

샤스탕 신부가 순교 직전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선교를 떠나오기 전에 이미 저는 언젠가는 하느님을 위해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교님이 당신을 따라오라고 저를 불러 주셨을 때 저는 제가 순교의 영예를 받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조선 땅에 도착했을 때, 5명의 신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매우 나약했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소식을 듣고 떨었습니다. 그후 주님께서는 저에게 용기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저에게 성사를 받은 많은 사람들과 새 신자들, 10~15세 아이들까지혹독한 고문을 견디며 보여준 모범 덕분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내일 동료 신부를 만나러 갑니다. 거기서 우리는 주교님을 압송해 간 관헌이 초조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함께 갈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감옥으로 끌고 가겠죠.

주교님과 수개월째 긴 순교의 길을 걷고 있는 친애하는 회장들과
열렬한 신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제 영혼은 주님께로 향해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조선 신자들이 교황 비오 7세에게 보낸 서한.   신유박해로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 다시 조선에 사제를 모시기 위하여 조선 신자들이 교황에게 올린 편지. 정하상과 유진길은 수차례 북경을 오가며 조선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1811,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고문서고)

조선 신자들이 교황 비오 7세에게 보낸 서한. 

신유박해로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 다시 조선에 사제를 모시기 위하여 조선 신자들이 교황에게 올린 편지. 정하상과 유진길은 수차례 북경을 오가며 조선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1811,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고문서고)

조선 신자들이 교황 비오 7세에게 보낸 서한

"조선 교우들이 땅에 엎드려 지극히 높으신 교황 성하께 올립니다.

구원의 길을 잃고 죽음 밖에는 기다릴 것이 없는 조선의 수많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만일 서양이나 베이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저희들은 무서운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헤어날 수가 없나이다. 구원이 하루 늦으면 저희는 하루를 고생할 것이요, 이틀이 늦는다면 이틀이 괴로울 것입니다.

만민에게 가르침을 전하여 교회로 인도하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도, 이웃을 사랑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데 힘쓰라는 복음의 진리도 모두 입을 수 없는 누더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교황 성하께서 이 온당치 못한 울부짖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라며, 순교자들의 공로에 의지하여 천만 줄기의 피눈물로 기도하오니, 하루 빨리 영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라나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