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가득찬 올리비에 메시앙이 포로수용소에서 신에게 던진 말은

"대체 왜 이러십니까"의 질문이 아닌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고백이었다

 

1939년,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당시 이미 파리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이자 음악선생, 작곡가였던 올리비에 메시앙은 위생병으로 징집되어 지금의 독일 괴를리츠 지방으로 향했다. 유럽 전역에 독일군의 공격이 이어졌고, 1940년 올리비에 메시앙은 독일군에게 붙잡혀 스탈락(Stalag)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올리비에 메시앙이 수용되었던 독일 괴를리츠(Görlitz) 근처의 스탈락8A(Stalag VIIIA) 포로수용소의 모습 

당시 수용소 포로들의 사기는 매우 떨어져있었다. 파리를 비롯하여 프랑스 북부가 나치군에 의해 점령 되었으며, 프랑스 남부에서는 친독정권인 비시정권이 세력을 잡아 유대인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전쟁은 마치 멈출 줄 모르는 전차와도 같이 계속 되었고, 올리비에 메시앙을 비롯한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종말의 때를 보는 듯 하였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올리비에 메시앙이 수용되었던 수용소의 독일 감독관들이 열혈 나치당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용소에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가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올리비에 메시앙을 찾아 그에게 노역을 면제 해주고 오선지와 연필, 지우개를 마련 해 주었다.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포로수용소의 빈 막사에서

메시앙은 오선지를 채워 내려갔다.

 

우연히 수용소에는 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 연주자가 함께 수감되어 있었고, 올리비에는 자신을 피아노 연주자로 삼아 피아노, 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을 위한 묘한 구성의 사중주를  곡을 완성하였다. 

1908년, 셰익스피어 문학을 번역하는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올리비에 메시앙은 어린 시절, 일찌기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고 작곡을 시작한 메시앙은 파리음악원에서 공부하고 후에 트리니티성당의 이름을 날리는 오르가니스트 연주자가 되었다. 1930년대 그의 초기작은 이미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었다. 신을 향한 그의 사랑은 열정적인 동시에 신비주의적이었다. 하지만 경건하다던지 청교도적인 모습과는 다른 인간적이고도 감성적인 사랑이었다.

 

완성된 곡은 1941년 1월, 처음으로 수용소에서 초연되었다. 막사 27번. 매서운 추위가 막사 안팎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떠한 난방기구도 없이 막사의 온기라고는 메시앙의 곡을 듣기 위한 독일군과 포로 400여명의 체온 뿐이었다. 포로수용소에 울려퍼진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요한계시록에서 감명을 받아 작곡되었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악보 첫머리에 그 곡의 영감의 기원과 의미를 메모하고는 하였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의 악보 위에는 요한계시록 10장의 구절이 적혀있었다. 

그의 마음에 다가왔던 성경구절은 특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천사의 선포였다.  메시앙은 그 시대의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말의 때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대 작곡가들은 곡을 통해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표현했다면 메시앙의 곡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종교적 믿음과 상상력의 표현이었다. 

메시앙에게 종말의 소리는 하나, 둘, 셋, 발 맞추어 걷는 나치군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메시앙에게 종말은 선율로 되살아나 때로는 길게 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급작스럽게 멈추기도 하는 악보 위의 노래가 되었다. 메시앙에게 시간의 종말은 역사에서의 탈출이자 천국으로의 도약이었던 것이다. 

총 8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사중주는 메시앙이 평생에 매료되었던 새소리를 묘사한 선율로 시작되어 부드러운 피아노의 음과 영원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로 끝이 난다. 

메시앙은 마지막 곡에 대하여 “이 곡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과 소통하고자 부활한 예수와 인간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전적인 사랑으로 느린 템포로 격양되는 마지막 곡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의 아버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신적인 존재가 천국으로 나아가는 것을 담고있다” 고 남겼다. 

<시간을 위한 사중주>의 초연이 끝나고, 수용소의 독일군 관리자는 메시앙을 프랑스로 귀환시켰고, 이후 메시앙은 파리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의 음악은 전쟁 이후 새로움을 찾아 헤매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메시앙의 음악은 1940년대 후반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세계 곳곳에서 최고수준의 연주자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연주되고 있다.